김태은 블로그

교육에 대한 지금의 생각

6년 전에 쓴 후기

6년 전 여름,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인 네이버 부스트캠프(이하 부캠)에 참여하며 매주 블로그에 후기를 썼다. 마지막 후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새로운 지식을 강의자 입맛대로 주입되는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배경지식을 토대로 스스로 학습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내가 원하던 교육방식이 이런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 6년이 흘렀다. 그 사이 개발자가 되었고, 아빠가 되었고, 하루의 대부분을 AI와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만에 그때 쓴 후기들을 다시 읽으니, 지금의 나라면 다르게 썼을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몇 문장을 골라, 지금의 생각으로 하나씩 답해 보려 한다.

사실 주입식 교육 덕을 봤다

여태 받았던 교육은 대체로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주입식 교육의 덕을 본 사람이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선행학습은 물론 개인 과외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내가 살던 제주에서 입시에 진심인 집들은 바다 건너 육지 대학, 그중에서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간절히 바랐다. 나도 별다른 의심 없이 그 목표를 내 것으로 삼았다. 그런 나에게 공부의 목표는 내 꿈이 아니라 대학이었다. 소위 말하는 정시파이터였다. 이해보다는 암기, 탐구보다는 기출. 달달 외웠다.

그리고 목표를 이뤘다. 제주도민이 바다를 건너 육지로 상경했다.

새로운 환경에 간 덕분에 많은 게 달라졌다. 대학에는 내가 만나고 싶었던, 의지와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도 그 안에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돌아보면 나에게 수능과 입시는 그 환경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시대를 잘 탔다고도 생각한다. 외운 만큼 점수가 나오고, 점수만큼 기회가 주어지던 시절이었다. 다만 이 방식이 앞으로도 통할지는 모르겠다.

해 보기 전에는 몰랐다

역시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해보는 게 낫다!

부캠 2주차 후기에 쓴 문장이다. 지금 봐도 맞는 말이다.

대학 시절 나는 이것저것 많이 해 봤다. 단편영화를 찍었고, 영화제를 열었고, 단과대학 학생회장 출마도 준비했다. 해 보기 전에는 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생각과 다른 점이 많았다.

내가 영화에서 좋아했던 건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직접 만드는 일은 아름다움만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함께하는 사람마다 바라는 게 달랐고, 그 의견을 하나로 좁혀 가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학생회도 마찬가지였다. 출마를 준비하며 들여다본 학생회 일은 행정 처리, 사람 관리, 외부 업체와의 미팅, 예산 관리 같은 것들이었다. 학생회 활동을 해 본 적도 없이 그 구조를 모르는 채 뛰어들다 보니 버거웠고, 결국 출마를 접었다.

연이어 부딪히고 나니, 잠시 멈춰서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고민하던 중 프로그래밍이 눈에 들어왔고, 복학하자마자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과제를 붙잡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밤을 새운 날도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일과 직접 부딪혀 느끼는 일은 다르다. 책이나 영상으로 보고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것만으로는, 그 일이 나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영화를 찍고, 영화제를 열고, 출마를 준비해 보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 일들을 막연히 동경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들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면,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시도들을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나와 맞는 일을 찾게 해 준 과정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학습해야할 개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미션 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스로 공부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스로 수행해야 했다.

부캠에서 강의자는 개념을 먼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대신 그 주에 익혀야 할 개념이 담긴 문제, 즉 미션을 내줬다. 무엇으로 공부해서 어떤 식으로 풀지는 각자의 몫이었다. 우리는 책이든 영상이든 검색이든 각자 편한 방식으로 찾아봤고,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파고들었다. 미션 기한이 끝나면 답지를 보는 대신 서로의 풀이 과정을 공유했다. 같은 문제인데도 풀이는 저마다 달랐다.

나는 내 답이 확실하다고 믿고 그 자리에 들어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풀이를 자주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무릎을 쳤다. 내가 놓친 개념이 거기 있었고, 같은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는 눈이 거기 있었다. 그 시간이 매일 기다려졌다. 그때의 내가 "내가 원하던 교육"이라고 부른 건 바로 이 시간이었다.

고백하자면, 지금은 그렇게 학습하지 않는다. 모르는 개념을 하나씩 짚어 가며 해결책을 찾던 길, 어찌 보면 일부러 돌아가던 어려운 길을 이제는 AI가 대신 걸어 준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은 같지만, 내가 직접 고민하는 과정은 훨씬 짧아지고 쉬워진 셈이다.

그래서 더 주의해야 한다. 고민하는 과정이 생략될수록 이 문제가 정확히 무엇을 묻는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 AI가 내놓은 해결책도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왜 꼭 이 방법이어야 하는지 오히려 더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AI가 내놓은 해결책을 생각 없이 갖다 쓴다면, 예전의 내가 이미 한 번 후회했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학교 프로젝트를 할 때 나는 개발자 커뮤니티인 stackoverflow에서 남의 코드를 가져와 쑤셔 넣고 구현만 했다. 돌아가긴 했지만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예전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며 쓴 글에도 그 이야기가 있다. 내가 쓰는 도구가 stackoverflow에서 AI로 바뀌었을 뿐, 쑤셔 넣으면 남는 게 없는 건 똑같다. 그래서 지난 글에 쓴 것처럼, 도움은 받되 잘 알고 써야 하고 판단은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지서

이제는 아빠가 되어서, 내 교육보다 딸 지서의 교육이 더 큰 관심사다.

요즘 지서는 "지! 지!" 하며 뭐든 자기가 하려고 한다. 밥을 먹여 주려고 숟가락을 들면 굳이 그걸 빼앗아 간다. 반은 입으로, 반은 식탁과 옷으로 가는데도 끝까지 자기가 먹는다. 어디 갈 때 안아 올리려 하면 몸을 비틀어 내려가서는 기어코 자기 발로 걷는다. 도와주려고 손을 뻗으면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고집이 엄청 세다. 사주를 봤더니 토의 기운이 많아서 아빠는 넘볼 수도 없을 거라 한다나. 맞는 말이다. 나는 이미 그녀를 넘볼 수 없다.

지서가 살아갈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AI 하나를 두고도 나라마다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정작 기술 업계에서 일하는 부모들이 교실에서 AI와 화면을 줄이자고 나서고, 중국 베이징은 초등학교부터 AI 수업을 의무로 넣었다. 우리나라는 AI 디지털교과서를 들였다가 반년도 안 돼 교육자료로 바꿨다. 모든 학교가 써야 하는 교과서에서, 학교가 골라 쓰는 자료로 물러선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무엇이든 물으면 AI가 곧바로 답을 내놓는 세상에서, 답을 많이 외운 사람에게 기회가 열리던 내 학창 시절의 방식은 통할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지! 지!" 하는 지서를 보고 있으면, 부캠 시절의 내가 좋아했던 배움도 원래 저런 모습이었겠다 싶다. 편히 기댈 수 있는 엄마 아빠의 손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굳이 자기가 해 본다. 흘리고 넘어져도 다시 해 보고, 그러다 결국 해낸다. 미션을 붙잡고 있던 부캠 시절의 나도 딱 저랬다.

우리 집의 두 교육관

아이 교육관 얘기를 하자면, 우리 집엔 두 입장이 있다.

수연이(아내)는 지서가 하고 싶은 걸 다 도전해 보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사회에 적응하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는 쪽이다. 안정추구형이라 그렇다. 나만 아는 길을 새로 내는 것보다, 사회가 정해 둔 길을 따라가는 쪽이 편하다. 그 길은 이미 많은 사람이 걸어 봐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이니까. 그런 내 인생도 좋다.

그런데 나는 수연이 쪽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수연이는 책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도서관이나 지자체에서 여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늘 무언가를 벌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멋있기도 하고, 가끔은 대리만족도 느낀다. 내 인생이 정속주행이라면 수연이 인생은 롤러코스터다.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서랑 수연이는 세상을 구하고, 나는 그런 우리 가족을 구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조금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하고 싶은 걸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나는 그 사람들이 지치지 않게 옆에서 힘이 되어 주고 싶다.

다가올 변화를 먼저 살피며

교육은 앞서 말한 대로 시대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라가 정하는 교육과정부터 곁에 있는 친구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까지(노는 걸 좋아하는 친구인지, 남들에 맞춰 공부하는 친구인지), 생각보다 많은 것이 영향을 준다. 그래서 부모로서 지서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면 좋을지 고민이다.

돌아보면 나는 늘 시대에 맞춰 살아왔다. 주입식 교육이 통하던 시절엔 열심히 외웠고, 개발자 호황기에 그 흐름을 타 개발자가 됐고, AI 시대가 오고 나서는 이 친구와 잘 지내 보려 애쓰고 있다. 수연이와 지서가 자기만의 꿈을 좇는 동안, 나는 그 옆에서 다가올 변화를 먼저 살피고 싶다. 그렇다고 둘의 꿈에 끼어들려는 건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우리 가족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게 하는 게 내 몫이다. 그래야 둘이 마음 놓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그런 둘을 옆에서 보는 게 내 행복이니까.

그러려면 나도 6년 전의 나처럼 계속 배워야 한다.

Though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