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늘 관심사였다
블로그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처음 시작한 건 기술 블로그였다. 목적은 개발 공부와 셀프 바이럴이었다. 공부한 걸 정리해서 올리고, 글을 쓸 때마다 페이스북 개발 그룹에도 부지런히 공유했다. 반응이 오는 게 재밌어서 꽤 신나게 운영했고, 실제로 취업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런데 막상 취업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손을 놓게 됐다.
- 2020~2022: Gatsby로 만든 기술 블로그. 댓글을 GitHub 이슈로 받게 해뒀는데, 지금 다시 열어봐도 그때 받은 댓글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2022: 노션 페이지를 웹페이지로 바꿔주는 오픈소스로 넘어가 보기도 했다.
그 뒤엔 육아 블로그도 만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꾸밀지에 힘을 다 빼버려서 금방 시들해졌다. 메인 화면에는 임신 주차를 세는 카운터를 달아뒀다. 글은 멈췄는데 카운터는 혼자 계속 올라가서, 지금은 129주째다.
그렇게 현생을 살다 보니 블로그에 대한 생각도 점점 희미해졌다. 가슴 한구석에 접어 넣어뒀던 마음이, 얼마 전 뜻밖의 계기로 다시 깨어났다.
언노운 북 페스티벌에서 산 진 한 권
10월에 인천 배다리에서 열린 언노운 북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친누나가 로그아웃아일랜드라는 창작자로 이 행사에 북마켓 부스를 냈는데, 워크숍을 하는 동안에는 부스를 비워야 해서 수연(아내)이가 대신 봐 주기로 했다. 나와 지서(딸, 2살)는 그 김에 같이 따라갔다.
다른 부스들도 구경하다가 작은배 부스에서 「글 쓰는 블로그 시작하는 법」이라는 진을 발견했다. 관심 있는 주제라 그 자리에서 한 번 훑어보고 내려놓으려는데, 수연이가 사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렇게 진을 사 들고 나오면서, 한구석에서 희미해져 가던 블로그에 대한 마음도 같이 꺼내 들게 됐다.

집에 와서는 클로드 코드나 챗GPT에 "블로그 싸게 만드는 법", "요즘 유행하는 블로그 플랫폼" 같은 걸 묻는 대신, 이 회색 종이 진부터 펼쳤다.
왜 블로그인가
나는 뭔가 모으고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사진도 갤러리를 전부 백업해두고, 좋은 기억은 따로 골라 모아둔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글도 쌓이는 즐거움이 있다.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아카이빙하는 게 좋다. 글이 쌓이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흩어져 있던 것들이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는 느낌이 좋다. 그런데 사진과 다르게 웹에 올리는 글에는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섞여 있는 것 같다.
나는 왜 누군가 읽어 주길 바랄까. 돌아보면 개발자가 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내가 만든 걸 누군가 쓰고 반응해 주는 순간이 좋았다. 앞에서 말한 기술 블로그도 그랬다. 글 쓰는 것도 재밌었지만, 쓴 글을 공유하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었다는 걸 알게 될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반응을 바라고 블로그를 하는 건 아니다. 누가 알아봐 주기 전에, 적어도 내가 보기에 가치 있는 걸 먼저 꺼내 놓고 싶다. 그렇게 꺼내 놓은 글들이 쌓이면 그게 곧 나를 소개하는 글이 되지않을까? 그래서 이 블로그는 생각 저장소의 느낌보다는 나를 소개하는 공간에 가깝다.
직접 안 만든 이유
나는 개발자고,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움직이고 반응하는, 좀 있어 보이는 걸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블로그를 직접 만들면 디자인하다 시간을 다 쓸 게 뻔하다. 육아 블로그 때 이미 한 번 겪어봤다.
AI가 있으니 금방 만들지 않냐고 할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줄진 않는다. 코드는 빨리 나와도 레이아웃, 폰트, 인터랙션 같은 걸 판단하고 정하는 건 여전히 내 일이다. 디자인이 끝나도 할 일은 남는다. 어떤 서비스를 쓸지, 그 서비스는 얼마에 어떤 기능을 제공하는지 저울질해야 하고, 글을 쓰고 발행하기까지의 인프라도 직접 갖춰야 한다. 그러다 보면 글 쓰는 것보다 블로그 만지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주객전도가 된다.
물론 나를 소개하는 공간이라면, 읽는 사람을 위한 검색이나 카테고리 같은 편의 기능, 폰트나 레이아웃처럼 쓰는 사람의 색깔이 묻어나는 무언가는 있어야 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직은 나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보여줄 게 뭔지도 모르는데 디자인에 의도가 생길 리 없다. 그런 건 글이 좀 쌓이고 필요해지면 그때 고민하려고 한다.
어디에도 없던 데이터
그럼 어떤 글을 쌓을까. 예전 기술 블로그는 공부한 걸 정리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글을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이 글을 쓰다가 든 생각은 이렇다.
- AI가 웬만한 정보는 다 정리해주는 시대에, 이미 있는 정보를 다시 쓰는 건 큰 의미가 없다.
- 반면 내 개인적인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던 데이터다.
- 그 데이터가 웹에 남아 누군가 볼 수 있다면, 그건 꽤 가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아직 근거가 있는 생각은 아니다. 그래도 머릿속에만 두면 아무것도 아니니, 일단 문자로 옮겨 웹에 남겨둔다.
앞으로 쓰고 싶은 것들
첫 글을 여기서 끝내긴 좀 아쉬워서, 앞으로 쓰고 싶은 걸 적어둔다.
하나는 일 이야기다. 요즘은 AI랑 같이 일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개발자로서 AI 덕분에 빨라진 것도 있지만, 오히려 새로 생긴 고민도 있다. 일하면서 부딪힌 문제들과 그때 했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싶다.
다른 하나는 일 외의 이야기다. 취미로 다니는 수영, 한창 덕질 중인 딸 지서, 수연이랑 나눈 대화들. 거창한 건 아니어도 살면서 문득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붙잡아 적어두고 싶다.
어느 쪽이든 결국 나한테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순서나 체계는 신경 쓰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부터 한 조각씩 꺼내 써보려고 한다.